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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이에게

2020.12.01.

⌜월든⌟

모서리가 살짝 뜯어진 이 책을 처음 읽은 건 2013년이었다. 아빠의 책장에 꽂혀있던 책 중 ⌜월든⌟을 꺼내든 이유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한 장면 때문이었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처음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이름으로 모이는 자리에서 ⌜월든⌟의 일부를 낭송한다.

"내가 숲으로 들어간 이유는 나의 의지대로 살기 위해서, 오직 삶의 근본적인 실제만을 접하고 거기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 알아보며, 죽을 때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기 위해서다"

처음 책을 덮었을 땐 울창한 숲과 그곳에서 자급자족하는 삶만 기억에 남았다. 책의 주요 내용이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라는 저자(이하 소로우)가 월든이라는 호숫가에 도끼 하나만 들고 들어가 2년간 자급자족하는 삶을 다루는 책이라는 점에서 스토리만 오롯이 기억하고 있는 셈이었다.


소비주의에 대한 비판이 담긴 책

그 후 6년이 지나 독서 모임에서 ⌜월든⌟을 다시 읽게 됐다. 읽는 시기와 상황에 따라 다른 관점으로 읽히는 게 책의 매력 아닐까. 다시 읽은 책에서 반가움을 느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한결같은 모습으로 있어 주니 고마운 느낌이랄까. 한결같이 숲을 지키고 있어 준 소로우가 반갑고 고마웠다.

반가운 그의 모습을 가만 살펴보니 담담하게 털어놓는 이야기에 뼈가 있음을 알게 됐다. 소비주의에 대한 비판이 녹아 있었다. 필요 이상의 것을 소비하기 위해 일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 스스로 비판이 타당함을 증명하기 위해 숲으로 들어가 최소한의 노동으로 삶을 풍요롭게 살아낸 것이었다.

소로우는 자신이 삶을 의지대로 살기 위해 몸부림치지 않았다. 더 가지려고 애쓰지 않음으로써 자족하고 조금만 일하고 삶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누렸다. 그의 삶을 보며 내가 무엇을 얻고자 노력하고 있는지, 나의 욕구가 내 삶을 오히려 짓누르지 않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미니멀리즘의 정수를 담은 책

최근 다시 이 책을 살피게 된 건 ⌜디지털 미니멀리즘⌟이란 책에서 디지털 미니멀리즘을 추구해야 하는 논거로 소로우의 주장을 인용했기 때문이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효용을 따질 때 삶의 비용을 포함하는데 이러한 방식이 소로우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렴풋이 책의 내용이 기억이 나며 고개가 끄덕여졌다. 다시 ⌜월든⌟을 펼쳤다.

소로우는 월든에서의 생활을 담담하게 써 내려감과 동시에 지출 명세서와 통계도 기록했다. 그는 통계를 바탕으로 "사람이 필요한 식량을 얻는 데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적은 노력밖에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생각보다 적은 노력으로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충분한 자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실제로 소로우는 1년 중 6주만 일하고 그 외에는 노동과 무관한 것으로 삶을 채웠다. 더 가지기 위해 더 일하고 더 벌 수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얽매임 없는 자유'를 추구하기 위해 덜 가지는 삶, 미니멀리즘을 선택한 것이다.


파이어족과 소로우의 공통점

이쯤에서 경제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파이어(FIRE) 운동이 생각났다. 조기 은퇴를 위해 빠르게 자산을 증식시키는 방법을 연구하고 실행에 옮긴다는 점이 숲으로 들어간 소로우의 삶과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비슷한 면이 있었다. 바로 자유를 위해 덜 가지는 삶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파이어족에게 중요한 지표 중 하나가 저축률이다. 이 지표를 높이기 위해 소비를 줄여한다. 덜 가지는 삶을 선택해야 한다는 의미다. 수익을 늘림과 동시에 소비를 줄어야 더 빠르게 경제적 자유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자유를 위해 파이어족은 필연적으로 소비를 통제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소로우도 얽매임 없는 자유를 위해 소비를 통제했다.

소로우의 주장을 한번 생각해보자. 자유로운 삶을 위해 무작정 적게 써라는 의미가 아니다. 불필요한 소비를 위해 삶을 낭비하지 말자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쓰는 돈의 상당수는 일시적인 행복을 위한 것이며 이를 위해 삶을 돈 버는 일로 채우는건 스스로 얽매임 없는 자유를 포기하는 셈이라는 의미다.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기 위한 자세

호숫가에서 자급자족하는 이야기 ⌜월든⌟으로부터 소비주의에 대한 비판, 미니멀리즘, 파이어족까지 왔다. 끝으로 파이어족이 얻는 보상에 대해 얘기하고 글을 맺어보자.

파이어족은 소비를 통제한 끝에 목표한 금액을 달성하고 경제적 자유를 얻는다. 어쩌면 오랜 노력 끝에 얻은 돈이 가장 큰 보상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보상은 덜 가져도 행복할 수 있다는 깨달음 아닐까. 목표한 돈을 모으는 과정에 자신에게 진정 행복을 가져다주는 소비가 무엇인지 발견하고 자신이 행복을 느끼는 곳에 시간과 돈을 쓰고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음으로 진짜 자유를 이룬게 아닐까. 진짜 보상은 목표를 이루는 중에 변화된 삶 그 자체일지도.

결국 ⌜월든⌟을 통해 소로우가 추구했던 '얽매임 없는 자유'는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온전히 자신을 알아가며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것에 소비하고 필요 없는 것을 얻기 위해 삶을 낭비하지 않는 삶이 아니었을까.